소니와 혼다가 함께 만든 전기차 아필라는 꽤 기대를 받던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백지화 소식이 나오면, 단순 실패보다 왜 이렇게 됐는지가 더 궁금해집니다.
전기차 시장은 브랜드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온 것처럼 보입니다.
전기차 프로젝트 볼 때
- 백지화 원인
- 투자 손실 규모
- 소니와 혼다 전략 변화
“미래에 부담을 남기지 않기 위해 창자가 끊어질 듯한 심정으로 결단했습니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이 기자회견장에서 이 말을 꺼냈을 때, 그 표정에서 모든 것이 읽혔습니다. 6년간 공들여 개발해온 꿈의 전기차, 소니와 혼다가 손잡고 만들던 아필라(AFEELA)가 출시를 코앞에 두고 전면 백지화됐습니다.
어제(3월 25일) 소니혼다모빌리티(SHM)는 아필라 1 세단과 차세대 SUV 모델의 개발 및 출시를 전면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어요.
68년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 없던 혼다가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필라가 뭐였나 — 6년짜리 꿈
이야기는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소니가 CES 2020에서 전기차 콘셉트 ‘비전-S’를 깜짝 공개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어요. 전자제품 회사 소니가 자동차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2022년 9월, 소니와 혼다는 한발 더 나아가 합작회사 소니혼다모빌리티(SHM)를 공식 설립했어요. 역할 분담도 명확했습니다.
혼다가 차체와 자동차 제조 기술을 담당하고, 소니가 엔터테인먼트·센서·소프트웨어를 책임지는 구조였어요.
2023년 CES에서 ‘아필라’라는 브랜드명이 공개됐고, 2025년 CES에서는 양산형 아필라 1을 전 세계에 선보이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전예약까지 받았습니다.
가격은 10만 2,900달러(약 1억 5천만 원). 91kWh 배터리에 항속거리 약 480km, PS 리모트 플레이로 차 안에서 PS4·PS5 게임을 스트리밍하는 기능까지 탑재한 미래형 전기차였어요. 올해 안에 미국에서 출시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6년의 꿈이, 출시 직전에 사라졌습니다.
왜 갑자기 중단됐나 — 세 가지 결정타
① 혼다의 전동화 전략 전면 재검토
직접적인 방아쇠는 혼다가 3월 12일 발표한 전동화 전략 전면 재검토였습니다. 혼다는 야심차게 준비하던 신규 전기차 브랜드 ‘혼다 제로’의 플래그십 세단·SUV와 고급 브랜드 아큐라의 전기 스포츠카 RSX 등 주력 전기차 3종의 개발을 전면 취소했어요.
문제는 아필라의 구조였습니다. 아필라 시리즈 개발은 혼다가 자동차 제조 기술을 제공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는데, 혼다가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면서 관련 사업 계획 전체가 무산된 셈이에요. 기둥이 빠지니 집이 무너진 겁니다.
② 미국 전기차 시장의 냉각
특히 아필라의 핵심 시장으로 염두에 둔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행정부의 전기차 구매 지원 정책을 잇달아 손질했고, 환경 규제 일부도 철회되며 전기차 판매가 감소했습니다. 10만 달러가 넘는 고가 전기차를 보조금 없이 미국에서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③ 중국발 저가 공세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사양의 차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10만 달러짜리 아필라의 경쟁력은 갈수록 희박해졌습니다. 중국 시장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서 하드웨어 성능보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한몫했어요.
얼마나 날렸나 — 23조 원의 청구서
재무적 충격이 어마어마합니다.
혼다는 이번 회계연도에만 영업비용과 지분법 손실 등을 포함해 최대 1조 2,700억 엔(약 11조 7천억 원) 수준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며, 향후 추가 비용까지 고려하면 총손실 규모는 최대 2조 5,000억 엔, 우리 돈으로 약 23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혼다는 중국 전기차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린 데다 트럼프발 관세 충격, 전기차 수요 정체 등 3중고를 이기지 못하고 69년 만에 첫 순손실을 기록했습니다. 68년 흑자 신화, 이렇게 끝났습니다.
PS5로 게임하는 차, 결국 가상으로만
아필라의 가장 독특한 셀링 포인트 중 하나는 차량 내 PS 리모트 플레이였어요.
지난 연말에는 PS 리모트 플레이 기능을 정식 탑재해 자신의 PS4/PS5에 언제 어디서든 원격으로 접속, 게임을 리모트 스트리밍으로 즐길 수 있다고 발표했을 정도로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아필라는 그란 투리스모 7 프로모션에 가상 차량으로 등장하기도 했어요. 이제 현실의 아필라를 볼 수 없게 됐으니, 게임 속 가상 아필라가 현실에서 가장 가까운 버전이 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요.
예약한 사람은? — 전액 환불
캘리포니아에서 사전예약을 마친 고객들이 가장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였어요.
SHM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AFEELA 1을 예약한 고객에게는 예약금을 전액 환불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위로가 되긴 하지만, 기다려온 시간과 설렘은 돌려받을 수 없겠죠.
혼다의 다음 행보 — 하이브리드로 유턴
혼다는 전기차 전략의 전면 수정 이후, 이미 검증되고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한 하이브리드 차량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겠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습니다.
일본과 미국 등 핵심 시장을 중심으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강화하고, 성장 잠재력이 큰 인도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에요.
혼다는 오는 5월 중장기 전략 발표를 통해 구체적인 미래 청사진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2040년까지 판매 차량을 전기차와 수소차로 전환하겠다는 장기 목표 자체는 유지하면서도, 지금 당장은 하이브리드로 체력을 회복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이게 혼다만의 이야기일까 — 일본 자동차의 위기
이번 사태는 혼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토요타, 닛산 등 일본 자동차 브랜드 전반이 비슷한 압박에 직면해 있으며,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가격과 성능을 모두 갖춘 현지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본 세단들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지고 있습니다.
전통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전환을 서둘렀다가 시장이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현실에 부딪히는 패턴은 혼다만이 아닙니다.
포드, GM 등 미국 업체들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결국 “전기차 시대는 온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천천히”라는 냉정한 시장의 답이 돌아오고 있는 겁니다.
마치며 — 꿈의 전기차가 남긴 교훈
소니와 혼다가 합작해 만들려 했던 아필라는 분명 흥미로운 실험이었습니다.
하드웨어 강자와 소프트웨어 강자가 손을 잡아 테슬라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는 매력적이었고, 실제로 CES 무대에서 등장할 때마다 주목을 받았어요.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10만 달러가 넘는 가격, 보조금 없는 미국 시장, 저가 공세를 퍼붓는 중국 경쟁자들, 그리고 혼다의 전략 전환이라는 네 개의 벽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어요.
이번 사태가 전기차의 미래가 없다는 신호는 아닙니다. 단지 전기차 시장은 모든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 가격과 현실성을 외면한 전략은 결국 무너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입니다.
애플 카, 다이슨 EV에 이어, 아필라는 ‘기술 기업이 자동차를 만들려다 실패한 사례’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